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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집이 강한 사람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

    고집은 성격이 아니라,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은 지식일 수 있다

    우리는 고집이 강한 사람을 만나면 성격부터 평가한다.

    “원래 저 사람은 고집이 세.”
    “자기 말밖에 몰라.”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졌어.”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누구에게나 고집은 있다. 평소에는 합리적이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사람도 어떤 문제에서는 좀처럼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집은 정말 타고난 성격의 문제일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고집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쉽게 버리지 않는 현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질문도 달라진다.

    고집을 어떻게 꺾을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은 언제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것을 스스로 내려놓는가.

    여기에 고집을 바라보는 새로운 출발점이 있다.

    1. 고집이 강하다는 것은 자기 안에 이미 답이 있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의외로 고집을 부리기 어렵다.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때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이 있고, 성공했던 방식이 있고, 오랫동안 믿어온 상식이 있다. 그것들이 쌓이면 사람 안에는 하나의 ‘답’이 만들어진다.

    “내가 살아봐서 알아.”
    “예전부터 이렇게 해왔어.”
    “그건 해봐야 안 돼.”

    이 말들이 모두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경험에서 얻은 지식에는 상당한 힘이 있다.

    하지만 바로 그 힘 때문에 역설이 생긴다.

    지식은 사람을 성장시키지만, 오래된 지식은 때로 새로운 지식을 막는다.

    어제까지 나를 지켜준 답이 오늘의 나를 가두는 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집의 반대말은 ‘순종’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집의 반대편에는 오히려 업데이트가 있다.

    새로운 정보를 만나고, 기존의 경험과 비교하고, 더 나은 것이 확인되면 자신의 답을 수정하는 능력이다.

    많이 아는 것보다 자신의 앎을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유연한 지식인인 이유다.

    2. 고집은 틀린 답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답이 없는 상태’일 수 있다

    사람에게 어떤 생각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생각을 버린 자리에는 무엇인가가 들어와야 한다.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 사람에게 “요즘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30년 동안 자녀를 키운 부모에게 “그런 방식의 교육은 이제 맞지 않습니다”라고 말해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에게는 자신의 경험이라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건 틀렸습니다”라는 말만으로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

    기존의 답보다 더 나은 답이 보여야 한다.

    여기에서 고집에 대한 또 하나의 역설이 나온다.

    고집이 센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설득이 아니라 더 좋은 대안일 수 있다.

    기존의 방법보다 새로운 방법이 실제로 더 합리적이고, 더 효율적이며, 현재의 환경에 더 잘 맞는다는 것을 이해하면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움직이기도 한다.

    그 순간 변화는 패배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에 새로운 지식을 더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내 말을 들어”가 아니라,

    “당신이 가진 답보다 이것이 왜 더 나은지 함께 보자”

    에 가까울 수 있다.

    3. 지식사회에서 더 위험한 것은 무지가 아니라 ‘완성된 생각’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은 정보를 접한다.

    검색하면 지식이 나오고, 영상으로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인공지능에게 질문하면 몇 초 만에 수많은 자료를 정리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지식이 없는 것보다 다른 문제가 더 중요해진다.

    자신이 이미 충분히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른다고 생각하면 찾는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배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완성되었다고 판단하는 순간 더 이상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그래서 지식이 많다고 반드시 고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지식이 많아지면서 더 정교한 고집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것은 개인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기업에서도, 사회에서도 일어난다.

    과거에 성공했던 방식이 새로운 시도를 막고, 오랫동안 유지된 제도가 변화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며, 전문가의 경험이 새로운 세대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래서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만큼 중요한 능력이 하나 더 필요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지금도 유효한가를 점검하는 능력이다.

    고집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고집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그렇다면 고집은 모두 버려야 할까?

    그것도 이상하다.

    자신의 원칙을 쉽게 버리지 않는 사람, 오랫동안 연구를 이어가는 사람, 수많은 실패에도 자신의 길을 계속 가는 사람에게도 강한 고집이 있다.

    어떤 고집은 사회를 불편하게 하지만 어떤 고집은 세상을 바꾼다.

    차이는 무엇일까?

    낮은 고집은 ‘내가 옳다’에서 멈추고, 높은 고집은 ‘무엇이 옳은가’를 끝까지 찾는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고, 후자는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지식까지 의심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집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을 함부로 버리지 않되 더 좋은 답을 만나면 기꺼이 수정할 수 있는 사람.

    원칙은 단단하지만 생각은 열려 있는 사람.

    그것이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고집이다.

    결국 사람의 성장을 막는 것은 고집 자체가 아니다.

    ‘나는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평생 공부한다는 것은 새로운 지식을 계속 쌓는 일이 아니라,

    어제까지 정답이라고 믿었던 것을 오늘 다시 질문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 사고 이후, 삶을 돌아보다 ③

    잘못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배울 것을 찾는다

    ― 사고 이후, 삶을 바꾸는 자기성찰

    사고나 어려움을 겪고 나면 사람들은 흔히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한다.

    하나는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는가?”라고 원인을 밖에서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두 질문 모두 조심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질문에만 머물면 원망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두 번째 질문을 지나치게 붙잡으면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는 자기비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재해나 범죄, 타인의 명백한 과실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자신의 잘못부터 찾으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사고 이후, 삶을 돌아보다‘에서 말하는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사고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통해 앞으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잘못을 찾아 자신을 벌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발견하여 삶을 바꾸는 것.

    자기성찰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1. ‘내 탓’이 아니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남 탓하지 말고 네 잘못부터 찾아라.”

    우리는 이런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잘못 사용하면 상대에게 또 하나의 상처가 될 수 있다.

    자기성찰의 목적은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결정하는 데 있지 않다.

    내가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발견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관계에서 큰 갈등이 생겼다고 해보자.

    상대가 분명 잘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에게 물어볼 수 있다.

    나는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들었는가?
    감정이 올라왔을 때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았는가?
    내가 옳다는 생각 때문에 상대의 입장을 무시하지 않았는가?
    같은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면 나에게도 반복되는 습관은 없는가?

    이 질문은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라는 말과 전혀 다르다.

    오히려 상대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삶에서 내가 먼저 바꿀 수 있는 삶으로 이동하는 질문이다.

    2. 사건과 나의 해석을 나누어 본다

    자기성찰을 할 때 유용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과 ‘내가 그 일을 받아들인 방식’을 나누어 보는 것이다.

    가령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상대가 그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나를 무시하는구나.”

    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면 서운함이나 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잠시 멈추어 볼 수 있다.

    사건: 상대가 “조금 더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나의 해석: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감정: 서운하고 화가 났다.
    나의 행동: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방어했다.

    이렇게 나누어 보면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사건 자체는 이미 지나갔지만, 사건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방식은 앞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의 인과관계를 공부한다는 것도 어쩌면 이런 과정과 닮아 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일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과 이후의 행동은 바꿀 수 있다.

    3. 반복되는 것을 관찰하면 나의 습관이 보인다

    한 번의 실수만으로 자신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살펴보아야 할 것은 ‘반복’이다.

    왜 나는 비슷한 사람과 계속 갈등할까?

    왜 중요한 순간마다 너무 급하게 결정할까?

    왜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하면 쉽게 화가 날까?

    왜 몸이 계속 피곤하다는 신호를 보내는데도 쉬지 못할까?

    왜 작은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해결하지 않고 미루는가?

    반복되는 문제를 살펴볼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세다.

    때로는 자신의 경험과 상식이 너무 확고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를 돌아보려면 먼저 내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면 기록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록이 쌓이면 그 순간에는 보이지 않았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예민해지는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방어적으로 변하는지, 어떤 관계에서 같은 갈등이 반복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내 삶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잘못한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삶의 패턴 속에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습관과 태도를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다.

    한 번의 사건보다 반복되는 패턴을 관찰할 때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도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

    4. 잘못을 발견했다면 행동 하나를 바꾼다

    성찰만 계속한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잘못했구나.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생각하고 다시 똑같이 행동한다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찰의 마지막에는 작은 행동 하나가 필요하다.

    말을 너무 빨리 한다면 한 번 더 듣고 말해 보는 것.

    운전할 때 조급해진다면 10분 먼저 출발하는 것.

    몸이 계속 보내는 신호를 무시했다면 생활습관을 점검하는 것.

    관계에서 같은 갈등이 반복된다면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연습을 해보는 것.

    조직에서 작은 안전 문제가 반복된다면 기록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

    거창할 필요는 없다.

    깨달음의 크기보다 변화의 지속성이 더 중요하다.

    잘못을 발견했다면 자책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다음 행동 하나를 바꾸는 편이 낫다.

    그 작은 변화가 쌓여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꾼다.

    사고 이후, 돌아보며 마지막에 묻는 것

    사고와 어려움이 없는 삶을 원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우리가 모든 일을 통제할 수는 없다.

    자연의 변화도 있고, 다른 사람의 선택도 있으며, 사회와 제도의 문제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만 우리는 일어난 사건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누군가는 사고를 통해 안전제도를 바꾼다.

    누군가는 관계를 돌아본다.

    누군가는 자신의 생활습관을 바꾼다.

    또 누군가는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아픔에서 얻은 배움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줄이는 데 쓰일 때, 개인의 경험은 사회의 지혜가 된다.

    어쩌면 사고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에 대한 완벽한 답을 찾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렇게 묻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나는 이 일을 겪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내가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고 이 경험을 앞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사고의 원인을 모두 알 수는 없어도, 사고 이후의 삶은 다시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성찰은 자신에게 잘못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을 찾는 데 머무르지 않고, 미래의 행동을 바꾸는 공부다.

    누구의 탓인지만 묻던 자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묻고,

    무엇을 배웠는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것.

    그 질문을 시작할 때 사고와 어려움은 단지 지나간 상처로만 남지 않는다.

    그 경험은 나를 더 깊게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드는 지혜가 될 수 있다.

    사고를 통해 잘못을 찾는 데 그치지 말자.
    그 안에서 다음 삶의 방향을 찾아보자.

    「사고(事故) 이후, 삶을 사고(思考)하다」

    그것이 우리가 어려움을 공부로 바꾸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