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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연과 가족의 관계성

    ― 인연은 주어지지만, 관계는 만들어진다

    서론 | 가까운 사이일수록 왜 더 힘들까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가족인데 그 정도도 이해 못 해?”
    “부모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자식인데 어떻게 저럴 수 있어?”

    이 말에는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하나의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가족이라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도와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물론 가족은 우리 삶에서 매우 소중한 관계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주는 관계 역시 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운 사이인데 왜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울까요?

    어쩌면 문제는 가족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오래된 상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혈연보다 먼저 ‘관계’라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인연은 주어지지만 좋은 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기도 하고, 부부가 되기도 하며, 학교와 직장에서 친구·동료·상사와 만납니다.

    이 만남의 상당 부분은 내가 완전히 계획하고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부모와 자식은 그렇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아이의 성격과 삶의 모습을 미리 결정해서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연은 우리에게 먼저 주어지는 관계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났다는 사실과 좋은 관계가 되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함께 산다고 서로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피가 섞였다고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저절로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가까운 관계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기대가 커집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어긋나는 순간 섭섭함과 화가 생깁니다.

    인연이 관계의 시작이라면, 그다음부터는 서로를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2. ‘가족이니까 당연히’라는 말이 관계를 어렵게 할 때

    가족에게 우리는 낯선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기대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기대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남편이라면’, ‘아내라면’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도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충돌이 시작됩니다.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간섭이라고 느낄 수 있고, 나는 걱정해서 한 말인데 상대는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수록 ‘당연함’을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인데 왜 몰라?”가 아니라

    “가족이지만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이 있구나.”

    라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 한 문장의 차이는 큽니다.

    전자는 상대에게 답을 요구하지만, 후자는 내가 상대를 알아갈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관계를 보장하는 자격증이라기보다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야 할 이유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3. 가족은 주어지는 것인 동시에 만들어가는 것이다

    가족을 혈연만으로 정의하던 시대에서 오늘날의 가족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1인 가구가 늘고, 재혼가정과 입양가정,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합니다. 가족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좋은 관계를 만드는 기본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대의 말을 듣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필요할 때 돕고, 잘못했을 때 사과하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오랫동안 쌓이면서 ‘우리’라는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가족을 조금 다르게 정의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인연이 ‘누구를 만났는가’에 관한 것이라면, 가족은 ‘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왔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이렇게 바라보면 혈연이 아닌 관계에서도 가족과 같은 깊은 유대가 만들어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혈연관계라고 하더라도 서로를 소유하려 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관계의 내용입니다.

    결론 | 관계는 완성품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오랫동안 가족을 ‘이미 완성된 관계’처럼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부모도 처음부터 좋은 부모였던 것은 아니고, 자녀도 부모를 이해하는 법을 처음부터 알고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부부 역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관계를 배워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니 가족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관계가 실패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갈등이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의 글에서 화가 났을 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가족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이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인연은 만남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뢰와 존중, 이해와 사랑까지 자동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면서 조금씩 쌓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가족은 단순히 ‘태어나면서 주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조금씩 가족이 되어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