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설명능력

  • 내 말이 맞는데 왜 상대는 듣지 않을까? 지식보다 필요한 설명의 힘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왜 화를 내지?”

    가족이나 직장에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 맞는 이야기입니다. 경험도 있고 근거도 있습니다. 상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설명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동의가 아니라 반발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해도 듣지 않아.”

    그런데 정말 상대가 듣지 않는 것만 문제일까요?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맞는 말을 했다는 것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했다는 것은 같은 것일까요?

    우리는 오랫동안 많이 아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넘치는 시대에는 새로운 능력이 필요합니다.

    아는 것을 상대에게 맞게 사용할 수 있는 힘입니다.

    정답을 아는 것과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은 다르다

    수학 문제에는 정답이 있습니다.

    답을 알고 있으면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조금 다릅니다.

    같은 말을 열 사람에게 했을 때 열 사람이 똑같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며, 지금 처한 상황과 받아들일 준비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말합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미래가 편하다.”

    부모에게는 자신의 삶에서 얻은 경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며 다른 가능성을 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부모의 말이 맞느냐 틀리느냐만 따지기 시작하면 대화는 쉽게 막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얼마나 알고 말하고 있는가?”

    내 경험이 아무리 소중해도 상대의 현실을 모르면 그 경험은 답이 아니라 과거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이 많다는 것과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입니다.

    설명이 통하지 않는다면 설명하는 사람도 공부해야 한다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듣는 사람의 태도를 문제 삼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고집이 너무 세다.”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물론 실제로 상대가 들으려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역설적인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같은 설명이 계속 통하지 않는다면 듣는 사람만이 아니라 설명하는 사람에게도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이것은 상대의 책임까지 내가 떠안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었는가.

    상대의 경험과 연결해서 설명했는가.

    상대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가.

    혹시 설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내 생각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까지 살펴보기 시작하면 소통은 단순한 말하기 기술을 넘어섭니다.

    설명은 내가 가진 지식을 꺼내놓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곳까지 가서 함께 돌아오는 일이 됩니다.

    많이 아는 사람보다 필요한 것을 아는 사람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정보를 가진 사람이 힘을 가졌습니다.

    책이 귀했고 전문가를 만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쟁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검색할 수 있고, 수많은 강의와 영상, 인공지능까지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제 ‘무엇을 알고 있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넘쳐나는 지식 가운데 지금 이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분별하는 힘입니다.

    가족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에게 열 가지 좋은 말을 해주는 것보다 지금 자녀에게 필요한 한마디를 아는 것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조직에서도 리더가 구성원보다 모든 것을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성원이 어디에서 막혀 있는지 파악하고, 그 사람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도록 필요한 질문이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큰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시대의 역설은 이것입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많이 말하는 사람보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더 필요해집니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아직 대화는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말을 하고 나면 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분명히 이야기했어.”

    그러나 말한 것과 전달된 것도 다릅니다.

    내 입에서 문장이 나왔다고 해서 상대에게 같은 의미로 도착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소통의 기준을 바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말했는가’가 아니라 ‘상대에게 어떻게 도착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설명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말솜씨만이 아닙니다.

    상대의 표정을 보고, 질문을 듣고, 이해하지 못한 지점을 살펴 다시 표현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설명하지 않는 것도 설명의 일부입니다.

    상대가 아직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기다리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경청이 바로 여기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충분히 듣고 관찰해야 상대에게 필요한 설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설명은 좋은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지식의 크기보다 지식을 사용하는 힘

    우리는 흔히 공부를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배운 것을 언제 사용할 것인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지,

    그리고 지금은 말할 때인지 기다릴 때인지를 아는 것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여기에 지식과 지혜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상대를 함부로 가르치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시 나의 설명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지식사회에서는 질문도 달라져야 합니다.

    “나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에서
    “내가 아는 것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가?”로.

    내 말이 맞는데 상대가 듣지 않는다면 상대를 탓하기 전에 잠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상대를 충분히 알고 있는가.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했는가.

    지금 이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말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습니다.

    나는 상대를 이해시키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인가?

    이 둘을 구별할 수 있을 때 지식은 비로소 관계를 살리는 힘이 됩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를 지나, 이제는 아는 것을 사람에게 이롭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