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사회가 놓쳐버린 ‘어른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다
서론|우리는 정말 어른이 많은 사회에 살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사회가 되었다. 거리에서도, 직장에서도, 지역사회에서도 나이 든 사람을 쉽게 만난다. 그런데 이상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노인은 많아졌는데, 우리는 왜 자꾸 “어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생각의 오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세월은 사람에게 나이를 더해줄 수는 있어도, 지혜까지 자동으로 더해주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은 교육 수준이 높고 정보와 지식의 축적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 사회다.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고,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가진 사람도 많다. 인터넷과 디지털 환경을 통해 평생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사람도 늘었다.
그런데 지식이 많은 사회와 어른이 많은 사회는 같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지식이 많아질수록 더 어려운 과제가 시작된다.
배운 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경험한 것을 누구에게 돌려줄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다음 세대가 활용할 수 있는 지혜로 바꿀 수 있는가.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는 노인의 증가가 아니라 지식을 지혜로 전환하는 어른의 부재인지도 모른다.
본론 1|어른은 나이의 결과가 아니라 ‘연구의 결과’다
우리는 흔히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는 것과 경험에서 답을 얻었다는 것은 다르다.
같은 일을 30년 경험했더라도 그 경험을 돌아보지 않으면 단지 시간이 쌓인 것일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실패와 갈등, 선택과 관계를 끊임없이 돌아본 사람에게 경험은 하나의 자료가 된다.
여기서 어른에 대한 정의를 조금 바꾸어볼 필요가 있다.
어른은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오래 살아온 삶을 연구한 사람이다.
자녀와 갈등했다면 “요즘 아이들은 왜 저럴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몰랐는지를 살펴보는 사람.
직장생활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었다면 후배에게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기보다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우면 같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지 정리하는 사람.
사업에 실패했다면 실패를 숨기는 대신 다음 사람이 같은 길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경험의 원인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
그때 한 사람의 인생은 개인의 과거에서 사회의 자산으로 바뀐다.
그래서 어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권위보다 연구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관찰해야 하고,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먼저 삶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어른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 배우기 때문에 가르쳐줄 것이 생긴 사람이다.
본론 2|후배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들을 만한 답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기성세대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른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만 질문을 뒤집어보면 전혀 다른 장면이 보인다.
젊은 세대가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들려줄 새로운 답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한 것일까.
과거의 경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 환경이 달라지면 과거의 정답이 오늘의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취업의 방식이 달라졌고, 결혼과 가족에 대한 생각도 변했다. 직업의 수명은 짧아지고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역할 자체를 다시 묻고 있다.
이런 시대에 후배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때는 이렇게 했다”는 정답지가 아니다.
“나는 이런 일을 겪어보니 이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너희 시대에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함께 살펴보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어른의 역할은 후배의 삶을 대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가 자기 시대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방향을 밝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회의 어른은 ‘사회적 부모’와도 같다.
가정의 부모가 아이의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듯, 사회의 어른도 젊은 세대를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다. 앞서 살아본 경험을 연구하고 정리하여 다음 사람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런 어른이 많아질수록 세대 차이는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지혜가 이동하는 통로가 된다.
본론 3|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노인 대책만이 아니라 ‘어른이 되는 공부’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노후 준비를 많이 이야기한다.
연금은 얼마나 필요한지, 건강을 어떻게 관리할지, 은퇴 후 어디에서 살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물론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나는 나이가 들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노후를 경제 문제로만 바라보면 사람은 일을 그만두는 순간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잃기 쉽다.
하지만 인생 후반기를 연구의 시기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50년, 60년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이미 엄청난 자료가 축적되어 있다. 가족관계, 직업, 실패, 성공, 인간관계, 돈, 자녀교육, 건강, 지역사회….
문제는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니다.
경험을 연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 사람의 시행착오가 정리되면 후배에게는 지도가 된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연구하여 사회에 돌려준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활 연구소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령사회는 반드시 사회적 부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십 년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연구자로 전환되는 순간, 고령사회는 인류가 한 번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던 거대한 지혜의 사회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노인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와 함께 ‘어떻게 어른을 만들어낼 것인가’를 질문해야 하는 이유다.
결론|어른의 부재는 새로운 어른이 등장할 자리다
우리는 흔히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낼 필요는 없다.
어른이 없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어른의 기준을 만들 때가 되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이제 어른은 나이로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많이 배웠기 때문에 어른인 것도 아니고, 높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어른인 것도 아니다.
자신이 배운 지식과 살아온 경험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혜로 바꾸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조건 없이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나이는 사회적 가치가 된다.
그래서 고령사회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른다.
“노인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어른을 만들어낼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 나이 든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오늘의 청년도 언젠가는 기성세대가 된다.
그러므로 어른이 되는 공부는 노년에 시작하는 공부가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관찰하고, 실패에서 배우고, 사회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으며, 내가 알아낸 것을 다음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지혜로 바꾸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이는 저절로 들지만, 어른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다음 단계의 지식사회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이미 가진 지식을 사람과 사회를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연구하는 어른’의 탄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