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현대의 효

  • 부모 자식 인연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부모를 잘 모시는 것에서 부모를 넘어서는 삶으로

    서론 | 지식사회에서도 효는 옛날과 같아야 할까

    우리는 오랫동안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은혜를 주고 갚는 관계’로 배워왔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키우고 희생하며, 자식은 성장한 뒤 부모를 공경하고 돌본다. 이러한 효의 정신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중요한 가치였다.

    그러나 사회는 크게 달라졌다. 오늘날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빠르게 접하기도 한다. 특히 디지털과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지식이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속도는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면 지식사회에서도 효는 부모의 말씀을 잘 따르고 부모를 잘 모시는 것만을 의미해야 할까?

    어쩌면 오늘날의 효는 부모에게 받은 것을 다시 부모에게만 돌려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 크게 성장시켜 세상에 돌려주는 것까지 포함해야 할지도 모른다.

    1. 부모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출발점을 주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나이가 곧 경험이었고 경험은 중요한 지식이었다. 그래서 부모의 말을 따르는 것이 자녀에게 안전한 삶의 방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식사회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모든 답을 가르쳐줄 수 없다.

    부모가 살아온 삶을 하나의 ‘자료’라고 생각해보자. 부모가 잘한 것도 자료이고 실패한 것도 자료다. 참고 견딘 일도, 해결하지 못한 갈등과 아픔도 다음 세대가 들여다볼 귀중한 삶의 자료가 된다.

    그렇다면 자녀의 역할은 부모의 삶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에서 배우고 그다음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역설이 있다.

    좋은 자식은 부모를 그대로 닮은 자식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출발하여 부모를 넘어설 수 있는 자식일지도 모른다.

    부모를 넘어선다는 것은 부모를 무시하거나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부모가 만들어준 토대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자녀가 더 배우고 더 넓게 생각하여 이전 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부모의 삶과 희생 역시 자녀를 통해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2. 효는 ‘얼마나 해드렸는가’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로

    효를 이야기하면 부모에게 자주 연락하고, 필요한 것을 해드리고, 아프면 병원에 모시고 가며 노년을 돌보는 일을 먼저 떠올린다. 이러한 돌봄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효를 돌봄만으로 정의하면 질문이 생긴다.

    부모 곁에서 자신의 삶 대부분을 희생한 사람만 효자이고, 자신의 공부와 사회적 역할을 위해 부모 곁을 떠난 사람은 불효자일까?

    이제는 “부모에게 무엇을 해드렸는가?”와 함께 “부모가 나를 키운 결과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평생 자신의 곁에 머물도록 키운 것이 아니다.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갖고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자녀의 성장은 개인적인 성공만이 아니다. 부모가 들인 시간과 노력, 희생이 사회적 가치로 바뀌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사람에게 받은 도움을 열 사람에게 나누고, 자신이 배운 것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의 문제 하나를 해결한다면 그것 역시 받은 은혜를 갚는 방법이다.

    그래서 지식사회의 효는 ‘보답의 효’에서 ‘성장의 효’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부모를 잘 모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모가 키운 것이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 그것도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볼 새로운 효의 모습이다.

    3.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서로 붙잡기 위해 있는 것일까

    부모와 자식은 매우 강한 인연이다. 그러나 그 강함 때문에 사랑과 집착을 혼동하기도 한다.

    부모는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의 삶에 계속 개입하고, 자녀는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길을 선택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관계의 목적이 서로를 붙잡는 데 있다면 이상한 모순이 생긴다. 자녀는 잘 성장할수록 독립해야 하는데, 효를 강조할수록 다시 부모에게 묶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부모는 자녀를 잘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좋은 자녀는 부모에게 계속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에게 받은 힘으로 세상에 나아가는 사람일 수 있다.

    인연을 소유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관계로 바라보면 부모와 자식의 역할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세상을 가르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자녀가 부모에게 새로운 시대를 설명해줄 수도 있다. 부모는 삶의 경험을 전하고 자녀는 새로운 지식과 시대의 변화를 나눈다. 나이가 영원한 위아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결론 | 효의 끝은 부모가 아니라 사회일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어디까지일까.

    이 질문을 ‘언제까지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가’라고만 생각하면 답을 찾기 어렵다.

    부모가 자녀에게 준 것은 밥과 집과 교육비만이 아니다. 한 인간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내어주며 삶의 토대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자녀가 그것을 가장 크게 갚는 방법은 부모에게 받은 것을 부모에게만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켜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일 수 있다.

    부모 역시 나이가 들었다고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시행착오를 정리하고 연구하여 다음 세대가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도록 지혜를 남길 수 있다.

    그래서 효를 이렇게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면, 부모에게 받은 것을 성장시켜 세상에 돌려주는 것은 효의 확장이다.

    부모는 자식을 세상으로 보내고, 자식은 부모에게 받은 힘을 다시 사회로 보낸다.

    어쩌면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서로에게 되돌아오는 작은 원이 아니라, 가족에서 시작하여 사회로 점점 넓어지는 원(擴張: 넓힐 확장)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