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관계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이 질문의 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부부처럼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가족은 선택하는 관계라기보다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관계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늘날 가족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해진다.
피가 섞였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평생 가족일 수 있을까?
가까운 가족인데도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해 오랫동안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있는 반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과 깊은 신뢰를 나누며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가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1. 혈연은 가족의 시작이지 완성은 아니다
과거 사회에서 혈연은 매우 중요했다.
가족은 생존의 공동체였고 부모는 자녀를 보호하고 자녀는 부모를 부양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동과 재산, 가업과 혈통까지 가족 안에서 이어졌다. 그래서 혈연 공동체가 단단할수록 살아가는 데 유리했다.
하지만 지식사회로 넘어오면서 삶의 구조가 크게 달라졌다.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와 다른 지역에서 살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며, 때로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갖는다. 부모가 평생 축적한 경험이 자녀의 삶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런데 가족에 대한 생각만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
“내 자식이니까 내가 결정해도 된다.”
“가족인데 이것도 못 해주느냐.”
“부모 말은 들어야 한다.”
이런 말의 출발에는 사랑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 소유가 더해지는 순간 관계는 달라진다.
여기에서 하나의 역설이 생긴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많이 간섭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독립된 삶을 더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시기가 있다면, 자녀가 성장한 뒤에는 관계의 방식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혈연은 관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가족관계는 혈연만으로 자동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2. 가족은 명사가 아니라 ‘과정’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우리는 가족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가족은 이미 완성된 관계가 아니라 평생 만들어가는 관계라면 어떨까?
가족이라고 해서 저절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오래 살았다고 해서 마음까지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대를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내가 너를 얼마나 잘 아는데.”
이 말은 친밀함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관계를 멈추게 만드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부모도 변하고 자녀도 변한다. 부부도 변하고 형제자매도 각자의 경험을 통해 달라진다.
따라서 좋은 가족이 되려면 과거의 상대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고민하며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다시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보면 가족의 핵심은 혈연보다 관계의 질에 가까워진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어려울 때 무조건 대신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힘을 갖도록 돕고,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의 말과 행동부터 돌아보는 관계.
이런 과정이 반복될 때 혈연은 비로소 깊은 가족관계로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조금 역설적으로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가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3. 미래의 가족은 혈연에서 ‘사회적 가족’으로 넓어질 수 있다
현대의 가족 변화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과거에는 한집에 함께 사는 것이 가족의 중요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아도 매일 소통할 수 있고, 서로 다른 나라에 있으면서도 생각과 지식을 나눌 수 있다.
반대로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물리적 거리가 가족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조건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진다.
원자료는 여기에서 가족의 개념 ‘사회가족’으로 확장한다. 혈연만이 아니라 뜻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성장에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것은 혈연 가족을 없애자는 의미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따뜻한 관계의 원리를 사회로 확대해보자는 생각에 가깝다.
직장에서 만난 동료, 함께 공부하는 사람, 오랫동안 뜻을 나누는 친구, 세대는 다르지만 서로의 성장을 돕는 사람도 삶에서 매우 중요한 관계가 될 수 있다.
미래 사회에서 사람을 연결하는 힘은 단순히 “누구의 가족인가”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가족의 의미는 결국 ‘얼마나 서로를 성장시키는가’에 있다
가족의 형태는 시대마다 달라져왔다.
그러나 우리가 가족에게 기대하는 본질적인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로 믿을 수 있고, 어려울 때 힘이 되며, 함께 있을 때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관계를 원한다.
여기서 가족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가족이라서 서로를 책임지는 것일까, 서로를 책임 있게 대하기 때문에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것일까?
혈연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고 만나는 인연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인연을 어떤 관계로 만들어갈지는 우리의 몫이다.
부모와 자식도, 부부도, 형제자매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상대를 내 방식에 맞추려고 하기보다 서로의 성장을 돕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관계의 원리가 가정을 넘어 이웃과 사회로 확장될 때 가족이라는 말의 의미도 조금씩 넓어질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의 가족을 이렇게 정의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가족은 피가 같아서 완성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고 성장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