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철 좀 들어라”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생각만 앞세우거나 책임 없는 행동을 하면 “아직 철이 없다”고 하고, 반대로 젊은 사람이 깊이 생각하고 주변을 배려하면 “참 철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철’은 무엇일까?
철이 든다는 것을 단순히 나이가 들고 세상 경험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이와 철듦이 반드시 함께 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이는 저절로 들지만 사람의 깊이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의 철과 인간의 철
‘철’이라는 말을 자연의 원리에서 바라보면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지구 깊은 곳에는 철을 중심으로 한 핵이 존재하고, 지구 내부의 운동은 자기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육신에도 철분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원소다.
자연에서 철은 단순히 단단한 금속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지구와 생명체가 제 기능을 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 조건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철이 든다’는 말도 단순히 나이를 뜻하는 표현만은 아닐 수 있다.
인간을 육신만으로 보지 않고 물질인 육신과 비물질적인 내면이 함께하는 존재로 바라본다면 또 하나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육신이 살아가기 위해 물질적인 양분을 필요로 하듯, 인간의 내면도 성장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지식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배우면서 수많은 지식을 받아들인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기술, 제도와 문화도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앞선 사람들이 수없이 경험하고 실패하고 연구하면서 남겨놓은 결과를 다음 세대가 받아들이고 다시 발전시켜 온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앞선 인류가 살아온 삶의 결과가 축적된 하나의 비물질적 자산이며,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킨다.
이 관점에서 ‘철이 든다’는 것은 세월이 몸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이 내면의 질량으로 쌓여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이 안다고 철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지식을 접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세계의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순식간에 찾을 수 있다. 학력도 높아졌고 전문가도 많아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철든 사회를 살고 있을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지식과 진리의 차이가 있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지식이라면, 그것을 충분히 소화하고 연구하여 지금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답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한 단계 다른 일이다.
많이 아는 사람은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이 갖춘 사람은 상대에게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다.
지식이 머리에만 머물면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반드시 사람을 깊게 만들지는 않는다. 배운 것이 삶 속에서 숙성되고, 자신의 경험과 만나고, 다시 타인과 사회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되었을 때 지식은 비로소 무게를 갖는다.
그래서 사람의 말에도 무게가 다르다.
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의 말은 쉽게 흩어지고, 어떤 사람의 말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직위가 높아서도 아니고 목소리가 커서도 아니다. 그 사람이 살아오며 배우고 연구하고 깨달은 것이 말 속에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아는 것이 많아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의 질량이 깊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고생을 많이 하면 정말 철이 들까
우리는 또 “고생을 해봐야 철이 든다”고 말한다.
물론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나 고생 자체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도 누군가는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누군가는 원망과 상처만 더 깊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고생의 양보다 그 경험을 어떻게 공부했는가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현장에서 얻는 공부가 있고,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기록을 통해 해야 할 공부가 있으며,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수많은 현상을 모아 원인을 찾고 새로운 답을 만들어야 할 역할이 있다.
모두가 똑같은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특히 지식인이나 리더가 현장의 모든 일을 직접 해야만 현장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힘든지, 무엇이 막혀 있는지, 어떤 답이 필요한지를 깊이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이용해 그 문제를 풀어주는 것이 그 사람의 역할이다.
그때 고생은 개인의 상처로 끝나지 않고 사회가 사용하는 지혜로 바뀐다.
철든 사람은 대접받는 사람이 아니다
여기에서 ‘철듦’은 개인의 성숙을 넘어 사회적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나이가 많으면 어른이고, 직위가 높으면 윗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그것만으로 존중받기 어려울 것이다.
진정한 윗사람은 아래 사람에게 대접을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살아오며 배우고 갖춘 것을 바탕으로, 뒤에 오는 사람이 더 나은 길을 찾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부모라면 자녀가 살아갈 시대를 공부해야 하고, 교사라면 학생이 무엇 때문에 혼란스러운지 알아야 한다. 기업의 리더라면 직원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해야 하며, 사회의 지식인은 국민이 부딪히는 문제를 연구해 새로운 답을 내놓아야 한다.
먼저 살아왔다는 것은 먼저 대접받을 권리를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뒤에 오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전해줄 책임이 생겼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의 세대갈등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우리는 흔히 젊은 세대가 어른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질문을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살아온 세대는 다음 세대가 존중할 만한 삶의 답을 충분히 만들어주고 있는가?
물질적인 풍요를 물려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은 부모 세대가 살아온 세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연구하고 시대에 맞게 다시 풀어 새로운 지혜로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선배 세대가 해야 할 공부이며, 지식인이 해야 할 연구이고,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배우고 갖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평생 배우기만 하기 위해 지식을 쌓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 갖추고 나면 그동안 받은 것을 세상에 사용해야 한다.
어릴 때는 배우고, 성장하면서 자신을 갖추고, 어른이 되어서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사회를 위해 운용해야 한다.
그래서 철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세상에 순응하는 것도, 고생을 많이 견디는 것도 아니다.
내 안에 들어온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소화하여 삶의 질량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사람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힘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철든 사람의 모습일 수 있다.
자연에서 충분한 질량이 하나의 힘을 만들어내듯 인간도 내면에 무엇을 얼마나 갖추었느냐에 따라 삶에서 드러나는 힘이 달라진다.
그래서 진정한 어른의 말은 큰소리를 내지 않아도 힘이 있고, 사람을 억누르지 않아도 주변을 움직인다.
그 힘은 나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직위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배우고, 경험하고, 연구하고, 그것을 다시 세상을 위해 사용하면서 쌓인 삶의 질량에서 나온다.
어쩌면 우리가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철이 든다”는 말에는 생각보다 깊은 질문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단지 나이를 먹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받은 지식과 경험을 내 안에서 더 깊은 지혜로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언젠가 그것을 다음 사람에게 필요한 양식으로 돌려줄 준비를 하고 있는가.
철이 든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채우는 삶에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으로 넘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