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말에 책임지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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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힘은 표현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에서 나온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말을 주고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SNS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의견이 쏟아진다. 지식도 넘쳐난다. 검색하면 무엇이든 알 수 있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일도 이전보다 쉬워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커졌는데, 왜 사람 사이의 소통은 더 어려워지는 것일까?

가족끼리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고, 직장에서는 세대 간 소통을 고민한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고, 자녀는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말을 책임지는 능력인지 모른다.

우리는 말을 못해서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소통이 어려워지면 우리는 대개 설명을 더 하려고 한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

그래서 다시 설명하고,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커진다. 부모는 자녀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자신의 경험을 더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역설이 있다.

상대를 이해시키려고 말을 더 많이 할수록 상대는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다.

왜 그럴까?

말의 내용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 말이 상대에게 지금 필요한 말인지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옳은 말을 하는 것과 상대에게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먼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말의 무게는 지식의 양보다 삶의 깊이에서 나온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의 한마디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반면 어떤 사람의 말은 논리적으로 맞는데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

우리는 이것을 ‘말의 무게’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말의 무게는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학력이 높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지식에 경험이 더해지고, 경험에 상대에 대한 이해가 더해지며, 그 위에 책임이 놓일 때 비로소 말에 무게가 생긴다.

많이 아는 사람과 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르다.

지식이 많아도 상대의 환경을 보지 못하면 그 지식은 훈계가 될 수 있다. 경험이 많아도 자신의 경험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충고가 간섭으로 변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말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실력이다.

아직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답을 서둘러 내놓기보다 조금 더 듣는 것이다.

듣는 시간은 말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좋은 말을 만들기 위해 상대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좋은 말은 상대를 바꾸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좋은 말을 ‘상대를 변화시키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생각을 한번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좋은 말은 상대를 바꾸는 말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말일 수 있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대신 결정할 수 없듯이 교사가 학생의 생각을 대신할 수 없고, 직장 상사가 구성원의 성장을 대신할 수도 없다.

사람은 누군가의 말에 끌려갈 때보다 자신의 생각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변화한다.

그렇다면 말하는 사람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 상대를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답을 찾도록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가정에서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교사의 한마디는 학생의 가능성을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다. 상사의 한마디는 직원에게 도전할 용기를 줄 수도 있고 의욕을 잃게 할 수도 있다. 사회 지도자의 말은 수많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위치가 높아질수록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를 더 책임 있게 해야 한다.

말의 시대에서 필요한 새로운 실력

지식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많이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식이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이제는 정보를 많이 가진 것만으로 사람을 이끌기 어렵다.

앞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능력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누구에게, 언제, 얼마나 전달해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힘일 것이다.

말을 잘한다는 의미도 달라져야 한다.

유창하게 말하는 것이 말의 실력이라면 인공지능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상황을 깊이 살피고, 그에게 지금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그 말이 남길 결과까지 책임지는 일은 인간의 성숙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진정한 소통은 입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말은 가볍게 사라지는 소리가 아니다.

한마디가 사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오래 마음에 남아 상처가 되기도 한다. 가까운 가족에게 하는 말일수록,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을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말을 잘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내 말에 책임질 만큼 상대를 이해하고 있는가?”

말의 힘은 목소리의 크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한 사람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그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말을 책임 있게 건넬 수 있는가.

그곳에서 비로소 말의 무게가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