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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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로 모이던 명절에서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추석이 다가옵니다.

예전에는 ‘추석’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향집 풍경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고, 음식을 장만하고, 조상을 기리고, 멀리 떨어져 살던 형제자매가 서로의 안부를 묻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추석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고향 대신 여행지로 향하고, 누군가는 명절 전후로 부모님을 찾아뵙습니다. 제사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지내지 않는 가정도 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결혼하면서 양가를 모두 생각해야 하고, 명절에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요즘은 명절이 예전 같지 않아.”

그런데 정말 추석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시대가 변하면 명절도 변한다

과거의 추석은 농경사회의 생활환경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며 수확에 감사하고, 마을과 가족이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명절이 흩어진 가족과 친척을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생활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가족의 규모는 작아졌습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었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전화와 영상통화로 얼굴을 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주말에도 부모님을 찾아뵐 수 있습니다.

생활환경은 이렇게 달라졌는데 명절을 보내는 방법만 과거와 똑같아야 한다면, 그 안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몇 시간씩 교통체증을 견디며 반드시 명절 당일에 이동해야 하는지,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여전히 정성의 기준이어야 하는지, 가족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야 하는지도 이제는 조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통을 버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에서 무엇을 이어가고, 무엇을 시대에 맞게 바꿀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가족은 그대로지만 사랑하는 방식은 달라지고 있다

가족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자녀가 결혼하면 새로운 가족관계가 만들어집니다. 내 아들의 배우자는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고, 내 딸의 배우자 역시 다른 가정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명절만 되면 여전히 어느 집에 먼저 가야 하는지, 얼마나 오래 머물러야 하는지, 누가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두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가정이 적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사이에서도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돈은 얼마나 버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아이 성적은 어떠니?”
“누구네 자식은 잘됐다더라.”

가족이니까 편하게 묻는 말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비교와 평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추석에는 질문부터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올해는 어떻게 지냈니?”
“힘든 일은 없었니?”
“요즘 가장 재미있는 일이 뭐니?”

자랑하고 평가하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가 살아온 한 해를 들어주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음식을 준비해야만 정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래 함께 있어야만 가까운 가족인 것도 아닙니다.

한 끼를 먹더라도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짧게 만나더라도 서로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좋은 명절입니다.

가족의 울타리를 조금 넓혀보는 추석

추석의 의미를 가족 안에서만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풍요로운 명절을 보내는 동안 누군가는 혼자 추석을 맞습니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사람도 있고, 명절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추석은 ‘우리 가족이 잘 지내는 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주변을 한 번 돌아보는 날이 되어도 좋겠습니다.

거창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안부를 묻고, 혼자 지내는 이웃을 한 번 살펴보고, 지역의 작은 가게나 시장을 이용하고, 아이들과 함께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것에서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명절의 따뜻함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과 사회로 조금씩 퍼져나간다면 추석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 마을이 함께 수확을 나누었다면, 오늘날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하나의 더 큰 공동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추석의 풍속은 우리가 만든다

전통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이유만으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좋은 뜻을 다음 세대가 이어갈 때 살아 있는 문화가 됩니다.

조상을 기억하는 마음도 소중합니다.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소중합니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도 소중합니다.

그 소중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형식은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명절 당일이 아니라 서로 편한 날 부모님을 찾아뵐 수도 있고, 음식을 간소하게 준비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늘릴 수도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가정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정성을 다하고, 다른 방식을 선택한 가족 역시 서로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전처럼 했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가족의 관계가 더 좋아졌느냐일 것입니다.

이번 추석에는 한 가지 질문을 가족과 나누어보면 어떨까요?

“우리 가족에게 추석은 어떤 날이면 좋을까?”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대답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른 생각을 들어보는 것부터 새로운 명절 문화는 시작될 것입니다.

추석은 어느 한 세대의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세대에게도 물려줄 우리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추석의 위기는 명절이 사라지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시대는 달라졌는데 우리가 명절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내지 못하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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