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이제는 빌기보다 감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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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시대의 명절, 축원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서론 | 우리는 추석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추석이 다가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족의 건강과 평안, 자녀의 앞날과 하는 일의 번창을 기원한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익숙한 명절의 모습이다.

그런데 한 번쯤 다른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식이 부족했던 시대의 축원과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의 축원이 같아야 할까?

과거 농경사회에서 인간의 삶은 자연에 크게 의존했다. 비가 적당히 내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태풍이나 가뭄이 오면 한 해의 생계가 흔들렸다. 질병이 생겨도 원인을 알기 어려웠고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다.

그런 시대에 하늘과 자연, 조상에게 풍년과 건강을 비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절실한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간다.

교육을 받고,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며, 과학과 기술을 사용한다. 어려움이 생기면 원인을 찾고 해결 방법을 공부할 수도 있다.

사람이 가진 지식과 능력이 커졌다면 명절을 대하는 마음도 함께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

1. 빌었던 시대에서 감사할 수 있는 시대로

과거의 축원에는 간절한 바람이 많았다.

“올해도 풍년이 들게 해주십시오.”

“우리 가족이 무사하게 해주십시오.”

“자식이 잘되게 해주십시오.”

그것은 부족했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선대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간다. 학교에서 배우고, 병원에서 치료받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지식을 접한다. 필요한 것을 직접 찾고 배우며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도 크게 넓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축원의 첫마디도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무엇을 더 주십시오”가 아니라
“이만큼 받을 수 있도록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부모의 수고가 있었고 그 부모의 수고가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수많은 선대의 삶이 있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키우고, 그다음 세대가 다시 지식과 경험을 보태면서 오늘의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추석의 감사는 단순히 음식이 풍성해서 드리는 감사가 아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이어져 온 수많은 삶과 희생을 기억하는 감사가 될 수 있다.

2. 감사는 과거를 기억하고, 축원은 미래를 향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수 있다.

감사만 하고 끝난다면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과거에 머문다.

조상과 부모가 우리에게 삶의 기반을 물려주었다면, 이제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지식시대의 축원은 세 단계로 달라질 수 있다.

“도와주십시오.”

에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제 제가 받은 것을 바르게 사용하겠습니다.”

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마지막 한 문장이 중요하다.

많이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많아질수록 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도 커진다.

나에게 주어진 능력을 가족만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 주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게 할 것인지, 더 나아가 사회를 조금이라도 이롭게 하는 데 사용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바라보면 홍익인간이라는 오래된 말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읽을 수 있다.

거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우고 성장하여 갖춘 것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사람과 사회에 이롭게 사용하는 사람.

그것이 지식시대에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홍익의 한 모습일 것이다.

3. 소원을 비는 명절에서 삶의 방향을 세우는 명절로

그렇다면 이번 추석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제사상을 크게 바꾸거나 오래된 전통을 모두 버릴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형식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의 방향이다.

가족이 함께 모였을 때 이런 질문을 한 번 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올해 무엇을 받았는가?
누구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는가?
나는 앞으로 무엇을 나누며 살아갈 것인가?

부모에게 감사할 일이 있다면 표현하고, 가족에게 고마웠던 일이 있다면 말하고,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도 짧은 안부를 전할 수 있다.

그리고 조상을 생각할 때에도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만 찾기보다,

“여기까지 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잘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지식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축원일 수 있다.

축원은 반드시 무엇을 달라고 청하는 행위일 필요가 없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축원이다.

결론 | 성장한 사람의 감사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오랫동안 조상을 잘 모시는 것을 효라고 배워왔다.

그 정신은 소중하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면 효의 모습도 조금 더 넓어질 수 있다.

부모에게 받은 것을 바르게 사용하고, 내가 배운 지식으로 사람에게 도움이 되며, 다음 세대가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몫을 하는 것.

그것 역시 오늘날의 효가 아닐까.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복을 비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았으면 한다.

빌지 않는다고 조상을 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사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것이 조상을 더 깊이 기억하는 방법일 수 있다.

과거의 명절이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고 기원하는 시간이었다면, 지식시대의 명절은 이미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발견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감사가 삶으로 이어질 때 축원의 방향도 달라진다.

“잘되게 해주십시오”에서
“잘 살아가겠습니다”로.

이번 추석에는 우리가 무엇을 더 받을 것인가보다, 이미 받은 것을 어떻게 세상에 돌려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 작은 변화에서 빌기의 명절은 감사의 명절로,
그리고 감사의 명절은 홍익의 삶을 다짐하는 명절로 한 걸음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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