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지 않을 때 더 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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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보통 말을 더 많이 합니다.

처음에는 설명합니다. 그래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설명합니다. 목소리에 힘을 주고, 사례를 들고, 예전 일까지 꺼냅니다.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가족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한 번 해서 통하지 않았던 말을 열 번 반복한다고 반드시 더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이 많아질수록 상대는 귀를 닫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상식과 반대되는 질문을 하나 던져보려 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말이 아니라, 말을 멈추는 시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말이 많아질수록 이해는 줄어들 수도 있다

우리는 소통을 흔히 ‘잘 말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며,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소통에는 그보다 먼저 필요한 과정이 있습니다.

상대를 아는 것입니다.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면서 어떻게 그 사람에게 맞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살아봐서 알아.”

그러나 부모가 살아온 시대와 자녀가 살아가는 시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직장의 선배도 말합니다.

“우리 때는 이렇게 했어.”

하지만 후배가 일하는 환경과 가치관은 이미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경험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내 경험이 옳다는 것과 그 경험이 지금 상대에게 필요한 답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데 있습니다.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좋은 말을 많이 하면 지혜가 아니라 소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침묵은 참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얻는 시간이다

‘말을 줄여라’고 하면 흔히 참고 견디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침묵은 수동적인 침묵이 아닙니다.

말하지 않는 동안 더 많이 보는 것입니다.

상대는 어떤 상황에서 화를 내는가.

어떤 말을 할 때 마음을 닫는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내가 어떤 방식으로 말했을 때 대화가 끊어지는가.

그리고 나는 왜 상대의 특정 행동에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가.

이런 것들을 관찰하기 시작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관계의 구조가 조금씩 보입니다.

원자료에서는 이를 긴 시간 동안 말을 아끼고 상대의 성향과 환경을 관찰하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공부로 설명합니다.

핵심은 시간의 숫자보다 충분히 알기 전에 함부로 결론 내리지 않는 태도에 있습니다.

그래서 침묵은 대화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먼저 배우는 시간입니다.

빨리 대답하는 사람이 반드시 소통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지식사회에서는 빠른 답변이 능력처럼 보입니다.

회의에서도 누군가 질문하면 곧바로 답을 내놓고, 가족이 고민을 이야기하면 해결책부터 제시합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빠른 답이 항상 좋은 답은 아닙니다.

상대가 아직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하지 않았는데 내가 답부터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듣는 일은 멈춥니다.

이것이 ‘아는 척’의 함정입니다.

“그건 내가 알아.”

“네가 뭘 고민하는지 알아.”

“그럴 때는 이렇게 하면 돼.”

정말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는 동안에도 실제로는 다음에 내가 할 말을 준비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경청의 기준을 새롭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청은 상대가 말할 때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특히 가족처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에게는 더 어렵습니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

그 한마디가 상대를 더 알아갈 가능성을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들은 뒤의 한마디는 달라진다

말의 힘은 목소리의 크기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상대를 얼마나 알고 하는 말인가에 따라 같은 한마디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충분히 듣지 않은 사람의 충고는 아무리 옳아도 간섭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고 내 상황을 이해한 사람이 건네는 짧은 한마디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차이는 무엇일까요?

말의 양이 아니라 이해의 양입니다.

많이 알고 있는 것과 상대를 많이 이해하는 것도 다릅니다.

책을 많이 읽고 경험이 많아도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모른다면 그 지식은 관계 속에서 제대로 사용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말하기 전에 나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말할 만큼 이 사람을 알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만 있어도 불필요한 충고와 간섭은 상당히 줄어듭니다.

말을 멈추면 상대보다 먼저 내가 보인다

침묵과 경청에는 또 하나의 뜻밖의 효과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말을 줄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왜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는가.

왜 내 의견과 다르면 곧바로 설명하고 싶어지는가.

왜 가족이 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화가 나는가.

어쩌면 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것은 상대의 말이 아니라 내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소통의 방향이 다시 한번 바뀝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경청이 결국 나의 고집과 조급함까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침묵이 가진 역설적인 힘입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더 깊은 대화다

우리는 말을 많이 나누면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은 많아도 서로 자기 주장만 반복한다면 그것은 대화라기보다 두 개의 독백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잠시 말을 줄이고 상대를 관찰하고 배우기 시작하면 실제 대화는 그때부터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무조건 더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잠시 멈추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것인가, 이 사람을 알고 싶은 것인가?”

이 질문에 따라 대화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수록 더 말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오래된 상식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수록 먼저 들어야 합니다.


이해되지 않을수록 더 관찰해야 합니다.


답이 나오지 않을수록 조금 더 공부해야 합니다.

침묵은 말의 반대가 아닙니다.

때로는 더 나은 한마디를 준비하는 가장 깊은 소통의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