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을 넘어 원인을 바라보는 법
― 책임을 묻는 것과 원망에 머무는 것은 다르다
사고나 어려움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무엇일까.
“저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됐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너무 억울해.”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실제로 상대방의 잘못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누군가의 부주의로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조직이나 사회의 관리 부족으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남 탓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먼저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책임을 묻는 것과 남 탓에 머무는 것은 다르다.
잘못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책임을 밝힌 이후에도 분노와 원망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사건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중요한 질문을 놓칠 수 있다.
1. 책임을 묻는 것은 ‘남 탓’이 아니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생각해 보자.
상대방이 신호를 위반했다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책임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다. 피해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재난도 마찬가지다.
안전관리가 부족했다면 관리 책임을 물어야 하고, 제도가 잘못되었다면 고쳐야 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같은 사고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남 탓을 하지 말자”는 말을 “잘못한 사람의 책임까지 묻지 말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책임을 밝히는 것과 내 마음이 원망에 붙잡혀 살아가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다.
책임은 사실의 문제이고, 원망은 내 마음의 문제다.
상대의 책임은 분명하게 밝히면서도, 나는 그 사건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생각할 수 있다.
2. 원망에 머물면 보이지 않는 것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었을 때 화가 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슬프면 울 수도 있고, 잘못한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저 사람만 아니었으면….”
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면 내 삶의 중심은 어느 순간 상대방에게 넘어가 버린다.
상대방이 바뀌어야 내가 편안해지고,
상대방이 사과해야 내가 살아갈 수 있고,
상대방이 벌을 받아야 내 마음이 풀리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이때 한번 질문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상대가 무엇을 잘못했는가?”에서
“나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이 질문의 변화는 상대방의 잘못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에게 가 있던 내 삶의 주도권을 다시 나에게 가져오는 일이다.
사고 이후에 ‘남 탓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남의 잘못을 모른 척하라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잘못 때문에 내 삶 전체가 계속 끌려가도록 두지 않는 것이다.
3. 원인을 밖에서만 찾으면 공부는 멈춘다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원인을 밖에서 찾는다.
“직장 상사가 문제야.”
“배우자가 문제야.”
“아이 때문에 힘들어.”
“사회가 잘못됐어.”
실제로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원인을 밖에서만 찾기 시작하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사라진다.
상대가 달라져야 하고, 환경이 달라져야 하고, 세상이 달라져야만 내가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의 삶을 살펴본다는 것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일이 아니다.
“그때 내가 조금 다르게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을까?”
“나는 작은 신호를 계속 무시하지 않았을까?”
“내 말이나 태도가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면 내가 반복하고 있는 습관은 없을까?”
이렇게 질문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보인다.
사고의 원인을 찾는 목적은 누군가를 죄인으로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남 탓을 멈춘다는 것의 진짜 의미
여기서 아주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자연재해나 범죄, 대형 참사, 타인의 명백한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당신도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아야 한다”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안전과 보호이며, 위로와 회복이다.
성찰은 다른 사람이 강요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볼 준비가 되었을 때 스스로 시작하는 질문이어야 한다.
그래서 ‘남 탓하지 말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내가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이어야 한다.
“나는 지금 누구를 원망하고 있는가?”
“그 원망 때문에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상대의 책임과 별개로, 내가 앞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사고와 어려움이 지나간 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책임져야 할 것을 바로잡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배우는 일이다.
사회는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여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조직은 안전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은 자신의 삶에서 살펴볼 것이 있다면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움직일 때 사고는 단순한 상처로만 남지 않는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원인을 살펴보는 것은 어렵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사건을 통해 내가 바꿀 수 있는 한 가지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고‘ 이후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의 잘못인가?”에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이제 무엇을 바꿀 것인가?”까지 나아갈 것인가.
남 탓을 넘어선다는 것은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도 아니고, 책임을 덮으라는 말도 아니다.
상대의 잘못은 상대에게 돌려주고, 내가 배울 것은 내가 가져오는 것.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사고와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내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려고 한다.
「사고 이후, 삶을 돌아보다 ③ ― 잘못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배울 것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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